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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의 불륜을 과학으로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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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plantous 2021. 11. 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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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마지막 왕비, 불운의 아이콘이자 사치의 아이콘으로 오랫동안 가십의 대상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 그만큼 많은 후대의 작가들이 책과 영화에서 그녀를 주인공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그런 가십거리와는 별개로 한 시대가 마감되는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었던 그녀의 삶을 역사적 기록을 통하여 올바르게 평가하려는 시도를 해왔습니다. 그 내용이 최근 출판된 낸시 골드스톤의 신간 "황후의 그림자 속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와 그녀의 딸들의 도전적인 삶"이란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스웨덴 백작의 30년에 걸친 로맨스가 과학으로 확인되다

엑스레이 형광 분석법

최근 마리 앙투아네트의 최고 가십거리 중 하나인 스웨덴 백작과의 불륜이 의심되는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새로운 첨단 과학의 수단으로 그 검열 속에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스웨덴 백작은 은밀하게 서신을 교환했었는데요, 역사학자들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그 서신들을 "엑스레이 형광 분석법"이라는 최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하여 분석하려는 시도를 한 것입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그녀의 정부로 알려진 스웨덴 백작 악셀 페르젠(Axel Fersen) 사이에 오고 간 총 8개의 편지를 이 엑스레이 형광 분석법을 통해 분석한 결과, 과학자들은 그 편지들에서 공식적으로 삭제된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더욱 심층적인 조사를 통하여 이 삭제된 부분은 악셀 페르젠 백작 자신이 스스로 검열한 결과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자신에게 보낸 서신의 내용 중 문제가 될 수 있는 단어들, 예를 들면 '사랑하는', '사랑스러운', 그리고 '미치도록' 같은 표현들을 스스로 지웠다는 것인데요, 과연 이것이 둘의 관계가 분륜 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걸까요?
전문가들은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 뿐 아니라 어떤 왕비도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사랑하는'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이런 단어 표현 하나로도 왕비는 불륜을 범한 죄로 벌을 받거나 심하면 처형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결코 끓어오르는 진심이 아니라면 이런 표현을 쉽게 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잘못될까 걱정한 페르젠 백작이 스스로 특정 단어들을 편지에서 지운 것입니다.

여러가지 정황 증거들

악셀 페르젠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누구나 눈치챌 정도로 티를 내었다고 스웨덴 대사가 말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1779년 스웨덴 외교부는 악셀 페르젠 백작이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을 때 국가적 스캔들을 막을 수 있겠다 싶어 아주 기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페르젠 백작은 건강하게 전쟁에서 돌아왔고 그 이후부터 노골적인 둘의 만남의 증거들이 확인되었습니다. 은밀한 편지들, 페르젠 백작의 일기장 등에서 이 둘이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지가 드러났고 심지어 이미 결혼한 여자와 어떻게 결혼할 수 있는지 고민한 흔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장 명확한 정황 증거들은 황실 근위대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황실 근위대의 수장(현 국무장관)이 기록한 바에 따르면, 페르센 백작이 파리에 있는 동안 왕비의 별장인 프티 트리아농에서 같이 지냈으며 심지어 루이 16세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어찌 잘 넘어갔다고 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의심스러운 임신

또 문제가 되었던 것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임신이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루이 16세와의 결혼 후 7년동안이나 아이가 없다가 페르젠 백작이 등장한 지 얼마 안 되어 임신을 하고 딸을 출산했고 또 3년 뒤 아들을 출산했습니다. 게다가 그 3년의 공백 기간은 페르젠 백작이 전쟁으로 미국에 있을 때였습니다. 10년 동안 2번 임신한 왕비가 페르센 백작이 돌아온 이후 3년 동안에 3번의 임신을 합니다. 어릴 때 죽거나 유산한 딸들을 제외하고 살아남은 아들은 루이 16세 보다는 페르젠 백작을 아주 많이 닮았다는 후문입니다. 이 아들은 나중에 일어나는 프랑스 혁명으로 고생만 하다가 요절한 루이 17세입니다.
또 다른 왕실의 기록에는 왕과 왕비가 둘만의 시간을 거의 가지지 않았다는 증거들이 남아있습니다. 루이 16세는 먹는 것을 즐기고 술 마시는 것도 좋아해서 거의 매일 밤 혼수상태가 되어 하인들의 등에 업혀 침실에 들어갔다고 하는데요, 이런 상태로 왕비를 임신시키는 것이 아마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부분입니다.

루이 16세의 장애?

하지만 이런 강력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불륜설은 전문가들에 의해 강하게 부정되기도 하는데요, 만일 진짜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큰 벌을 받거나 왕비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왕과 왕비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위에 언급한 엑스레이 형광 분석법뿐만이 아닙니다. 현대 신경의학의 발달로 인하여 과학자들은 루이 16세가 '자폐증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결론을 내렸는데요, 자폐증 스펙트럼 장애의 특징은 지적능력은 뛰어나나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을 힘들어하며, 항상 정해진 스케줄대로 움직이며 화날 땐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루이 16세는 결혼한 이후에도 부부간의 잠자리가 무엇인지 몰랐다고 하는데요, 답답한 마리 앙투아네트가 친정 오빠에게 상의하자 친정 오빠가 직접 프랑스를 방문하여 루이 16세에게 부부관계와 임신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주어야 했다고 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정치적으로 적대관계에 있던 세력들이 루이 16세에게 여러 여자들을 보내 유혹하게 했지만 루이 16세에겐 통하지 않았는데요, 역대 다른 왕들과는 달리 그는 후궁을 한 명도 두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화들을 살펴볼 때 아마도 루이 16세는 타고난 장애로 인하여 성인 남자로서의 은밀한 욕구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또 이런 사실들은 어떻게 루이 16세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불륜 사실을 알고도 묵인할 수 있었는지가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루이 16세에게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실에서 마음을 털어놓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고 친구였으며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도 루이 16세의 이런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왕의 정적으로부터 또 나중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의 혼란 속에서도 기꺼이 목숨을 바쳐 그를 보호하고자 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빛났던 페르젠 백작의 순정

물론 페르젠 백작에게도 여러 정부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함께할 수 없는 여인을 사랑했기 때문이며 그의 진심 어린 마음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가 있었던게 사실인것 같습니다. 이것은 그의 일기장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사실 페르젠 백작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죽기 직전까지도 그녀를 살리기 위해 사력을 다해 고군분투했습니다. 프랑스 왕비를 향한 그의 마음은 진심이었던 것입니다.
남아있는 둘 사이에 오고간 편지들은 주로 1791년에서 1792년 사이에 쓰인 것인데요, 마리 앙투아네트가 감옥에 있을 때까지도 마지막 서신이 오고 갔습니다. 이 둘의 사랑은 단순히 분륜 이라고만 부를 수 없는 역사책에 기록될만한 진심 어린 사랑이었습니다.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스러져간 그들의 가슴 아픈 사랑과 배신의 스토리는 후대 사람들에게 길이길이 회자될 만큼 슬프고도 도발적입니다.
이로서 왕실의 가십이 현대과학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역사적 진실로 판명된 순간을 전해드렸습니다. 다음에는 더 재미있는 소식으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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